가느다란 빗방울이 조용히 내리는 늦은 봄 저녁.
고전 피아노 위에 잔잔한 곡이 흐르고,
삼인(三人)이 물기 머금은 공기 속에서 서로의 침묵을 들어주기 시작한다.
1. 비는 왜 사람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가
파스칼
비가 내리는 날, 나는 신의 침묵을 더 자주 떠올립니다.
세상은 늘 말이 많지만, 비는 조용히 내려오지요.
그 조용함 속에서… 인간의 내면은 자신의 연약함을 직면하게 됩니다.
비는 존재가 ‘갈대’ 임을 속삭이는 시간이지요.
김소월
선생 말씀… 가슴에 머뭅니다.
저는, 비를 보면 떠나간 사람을 먼저 떠올립니다.
봄비든 가을비든…
꽃이 피면 시들고, 피었던 마음은 젖어 남지요.
비는 사랑을 데려오고… 이별도 함께 데려갑니다.
에릭 사티
(작은 미소를 띄우며)
저에게 비는… 리듬입니다.
단조로운 듯 반복되지만, 그 안에 무한한 변화가 있지요.
슬픔과 아름다움이 겹쳐져 있는 음악처럼.
비는 기억과 현재가 동시에 울리는 악상입니다.
2. 비는 머물지 못하는 것들을 상기시킨다
파스칼
비가 내리는 것을 보면, 나는 ‘지속 불가능한 모든 것’을 생각합니다.
인간의 영광, 사랑, 젊음… 모두 잠시 내렸다가 스며들듯 사라지지요.
인간은 유한함을 부정하지만, 비는 그 유한성을 일깨우는 은유입니다.
김소월
맞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시로 썼습니다.
“가는 길에 진달래꽃을 뿌리오리다.”
남는 것은 꽃잎도, 길도 아니고…
그날의 비였지요.
지나간 마음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이 어쩌면… 슬픔의 본질 아닐까요.
에릭 사티
(작곡가 특유의 간결한 언어로)
비는 머물지 않고… 악보도 남기지 않죠.
다만 소리와 감정은… 사람 안에 남습니다.
그래서 전, 비 오는 날은 음악을 남깁니다.
곧 사라질 감정을 붙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니까요.
3. 사랑과 이별은 왜 비와 함께 떠오르는가
파스칼
사랑은 사람을 기꺼이 고통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그러나 이별은 인간이 그 고통을 끝내고자 선택할 수 없는 일이지요.
비는 사랑보다 더 정직합니다.
비는 약속하지 않고, 내리다 그칩니다.
사랑은 약속하지만… 종종 비처럼 사라집니다.
김소월
사랑도 비처럼… 예고 없이 오고
예고 없이 떠나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아직도 그를 생각합니다.
비는 그런 ‘지나감’을 잊게 하지 않아요.
오히려 다시 꺼내 앉히지요.
에릭 사티
이별은 음이 끊긴 뒤의 여운 같아요.
멜로디가 멈췄다고 감정이 사라지지 않듯이,
사랑도 끝났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비처럼, 그 흔적은 오래도록 잔향처럼 남습니다.
내 음악은 그 잔향을 위한 것입니다.
4. 찬란하고 소중한 것들은 왜 오래 남지 못하는가
파스칼
인간은 영원을 갈망하지만, 결국 시간 속에 존재합니다.
찬란한 것은, 본질적으로 오래 지속될 수 없기에… 찬란한 것이지요.
영원한 꽃은 더 이상 꽃이 아닙니다.
김소월
맞습니다…
꽃이 져야 꽃이지요.
슬픔도, 그래서 슬픈 겁니다.
계속 슬프기만 했다면… 그건 그냥 어둠일 테니까요.
에릭 사티
저는 음악을 남기지만,
그 음악이 끝나는 순간을 사랑합니다.
가장 고요한 음표,
그것이 슬픔이든, 위로든, 결국 사라지는 순간…
그 자리에서 진짜 감정이 시작되죠.
[끝맺음, 마지막 말]
파스칼
비는 신의 침묵이고,
인간의 눈물이며,
영원의 부재 속에서 빛나는 유한의 철학입니다.
김소월
비는 이별의 소리입니다.
그러나 이별은 곧 기억이고…
기억은 시가 됩니다.
에릭 사티
비는 음표 없이 쓰는 음악입니다.
그 소리를 듣는 건… 결국 마음입니다.
비는 조용히 그쳤다.
그러나 세 사람의 말은 마음 어딘가에
젖은 구름처럼 머물렀다.